너무 깔끔하고 깨끗하게 하려고 집착했던게 문제였던거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진흙탕을 뒹굴수도 있는건데 뭐 그런걸 무서워 했을까?
일단 부딪혀보고 진흙탕이면 씻고 나옴 되는거다.
그러다 깔끔하게 해결되면 기분 좋고 그런거지 뭐!
원래 진흙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러다 진창만 뒹굴다 끝나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멍때리다 허송세월 보내는 것보단 나으니까….
너무 깔끔하고 깨끗하게 하려고 집착했던게 문제였던거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진흙탕을 뒹굴수도 있는건데 뭐 그런걸 무서워 했을까?
일단 부딪혀보고 진흙탕이면 씻고 나옴 되는거다.
그러다 깔끔하게 해결되면 기분 좋고 그런거지 뭐!
원래 진흙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러다 진창만 뒹굴다 끝나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멍때리다 허송세월 보내는 것보단 나으니까….
www.goddaddy.com로 서비스 받고 있는 인증서 하나가 의도치 않게 자동결재 되어 취소하려고 사이트 들어갔는데 정말 더럽게 느리다.
payment list에 있는 cancel 메뉴를 누르면 payment가 정말 취소되는지 알 길이 없어support 메뉴에서 online 문의하기를 눌렀는데 팝업뜨는데만 몇십초가 걸린다.
얼마전엔 사이트 자체가 다운되어 한참 속썩이더니 문의메일 하나 넣는데도 이렇게 힘이 들어서야 서비스 사용할 마음이 생길리가 없다.
해킹 당한적도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두번다시 쓰지 말아야지.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551651
카페에서 Spring camp 발표자료 만들다가 잠시 시간때울겸 보기 시작한 웹툰인데,
인터넷 악플러들 모아 악플대전을 치루게 한다는 발상이 재미난다.
스토리가 진행중에 드러나는 네티즌과 악플러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대단하다.
앞으로 애독해야지.
그리고 오늘 본 명장면(?)
CF를 이용한 사내용 PaaS개발 패턴
1. 뭔가 새로운 기능 구상한다
2. 적당히 기능 정의를 하고 구현해야할 UI를 러프하게 연습장에 그려본다.
3. CF 어디를 수정해야할지 와꾸(?)를 잡아본다.
4. 와꾸(?)가 잡히면 이제 터미널 열고 CF 소스를 깐다.
5. 소스를 까보며 아직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한 CF의 동작 원리와 기능들을 보며 감탄한다.
6. CF 수정 완료
7. 좀 아쉬운 마음에 CF 소스를 좀더 열어보며 궁금증 들을 해결한다.
8. 궁금증은 다 해결되었다! 그리고 급격한 의욕 감퇴..
9. 남은건 UI개발, 아 하기싫어…
10. 1초단위로 하기싫어 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느릿느릿 꾸역꾸역 허접하게 UI기능 개발
11. 1부터 다시 반복
그리고 지금 난 9번 상황…@_@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 받은 대사는 범인이 수사관 이원규(차승원)에게 던지는 한마디
소수의 억울한 희생으로 부흥을 누리는 마을과 이 마을의 잔인한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범인,
그리고 이 마을에 연루된 아버지의 부정한 진실을 알게된 수사관 이원규(차승원)의 고뇌
요즘 우리가 다시 봐야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
자연이란게 워낙 무심하고 잔인하다보니
나약한 인간은 언젠가 생존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수의 희생을 선택해야만 할 때가 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행위가 정당한 선택이 아닌 부끄러운 선택이었음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힘든 시대에 소수의 희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의만 외쳐대는 잔인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전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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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개인적인 사족…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우후죽순처럼 얼굴을 드러내는 박정희 시대 찬양론자들을 보면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이상 어디까지가 조작이고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이러한 것들도 결국은 개개인의 선택의 결과라 생각한다.
박정희 시대의 유례없는 급성장덕에 지금 내가 호의호식을 하고 있다.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에 반하는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대규모 토목건설을 위해 판자촌에서 쫒겨나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고, 누군가는 지독한 공장 환경의 악영향으로 불구가 되어 살아야했다. 누군가는 전장으로 내몰려 수많은 사선을 넘어야 했고, 누군가는 먼 나라 광부로 팔려나가 반평생을 흙더미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또 누군가는 진실을 외치기 위해 자기 몸을 불살라야 했고, 누군가는 빨갱이로 몰려 어두운 감옥에서 영문도 모른채 차가운 시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해야만 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내가 시대비판을 할 때마다 어르신께 들었던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시대의 부끄러움을 기억해야한다. 감추어서도 안된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부모님 세대의 희생으로 물려받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우리는 이러한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한다.
잊는 순간 역사는 반복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희생으로 잘되어야 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 없는 새로운 성장 방법을 선택해야 될 때이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 누군가의 (억울한)희생을 정당화하는 잔인한 선택은 이제 그만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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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약간 흥분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미스중 하나인 위안부 할머니 위로금 삥땅친 부분에 대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덕으로 포항제철도 건설하고 도로도 닦고 다들 잘먹고 잘 살았으니 된거 아니냐고 자꾸 쉴드질 하는데 그럼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니네가 책임 질거냐?
…중략…
맥도널드의 글들은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맥도널드는 전쟁범죄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독일과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정부가 저지른 포악한 행위에 대하여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 그리고 이어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진다. “영국과 미국 사람들은 전쟁 중에 저질러진 잔인한 행위들, 즉 민간인에 대한 폭격, 각종 전쟁 기술,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가?” 1945년에서 1946년 사이에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이런 질문들은 아주 의미심장하고 예리한 것이었다.
…중략…
지식인들의 책임에 관해서는, 조금 다르지만 역시 고통스러운 질문들이 남아 있다. 지식인들이라면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정부의 문제점, 동기, 감추어진 의도 들을 분석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서방 세계의 지식인들은 정치적 자유, 정보에 접근할 권리,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더욱 그런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 소수의 특권층을 위하여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현대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왜곡과 오도, 이데올로기, 계급적 이해관계 뒤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라고 시간적 여유, 시설, 훈련 등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책임은 맥도널드가 말한 “일반 대중의 책임” 보다 훨씬 엄중한 것이다.
…중략…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여서 아무 논평 없이 지나갈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중략…
어떤 개인이 국가이익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 것은 그리 큰 관심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지식인 사회에서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미국이 인근 국가(쿠바)를 공격한 것이 부정한 일이 아니었다고 온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본분으로 생각하는 역사가에게 인문학계의 윗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을, 지식인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리고 베트남 협상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와 그 대변인이 무수히 해온 거짓말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중략…
다음 사실만 강조해두고자 한다. 전문가 숭배는 이기적(그 전문가들의 이익에만 봉사)일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다. 물론 필요한 곳에서는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들 분야는 진지한 학문 분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학문 분야의 장점, 특히 그 학문이 이룩한 성과를 판단해본 다음에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일뿐만 아니라 아주 위험하다. 일부에서 믿는 것처럼 외교정책을 수행할때 적용되는 제대로 검증된 이론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잘 보존된 비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원칙이나 정보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왜 그것을 지금껏 공개하지 않고 있는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혹은 정책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볼 때, 외부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고려 사항과 원칙들이 있다는 얘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우리가 지식인의 책임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그들이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분석에 어떤 구실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중략…
이제 마지막으로 맥도널드의 글과 지식인의 책무로 돌아가보자. 맥도널드는 독일의 강제 수용소 경리부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그 경리부장을 목매달아 처형하겠다고 하자 그는 눈물을 터뜨리며 이렇게 항의 했다. “왜 나를 처형하려고 합니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맥도널드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도덕률과 어긋나는 지시를 받았을 때 상급자에게 적극 저항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 강제수용소 경리부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 했길래?”라는 질문은, 매일 베트남 학살 사건을 신문에서 읽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자유의 옹호라는 번드레한 헛구호를 정당화하는 기만행위들을 만들어내고, 말하고, 용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버지는 늘 나의 포악(?)한 성격을 걱정하신다.
내가 겉보기엔 조용조용 무던한 성격으로 비추어 지는데 반해, 애가 한번 꼭지가 돌면 겉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폭발해서 그것이 늘 걱정이라 하신다.
그래도 나의 그런 모습들이 사리사욕 보단 나름 불의를 참지 못해 하는 것으로 보여 뭐라 질책할 수는 없지만, 행여나 그러한 일들로 남의 눈에 날까 걱정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래 에피소드들은 부모님(및 기타 주변 분들)께 전해들은 아버지 전설
(재미를 위해 약간 과장된 말투를 사용함)
===
—
에피소드 1, 선생님 초임 시절, 1960년대, 아버지 약 20-22세 때로 추정
배경설명 : 도 장학사 방문으로 학교는 매우 분주한 분위기, 도 교육청 관계자로부터 모든 선생들은 정장을 차려입으라고 지령이 내려옴. 그러나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정장이란건 제대로 본적도 없는 데다가, 제대로 갖춰 입을 돈도 없었음. 그냥 늘 입던 대로 구두, 정장 면바지, 자킷에 허름한 목티 걸치고 출근
아버지 : (출근 완료)
교육청 관계자 : 어이, 일루와봐. 정장 입고 오란 말 못들었냐?
아버지 : 어라? 이거 정장 아닌가요?
교육청 관계자 : 셔츠랑 타이는?
아버지 : 아, 돈이 없어서 사입기가 힘들어요.
교육청 관계자 : 나가!
아버지 : 네. (정말 나감)
교육청 관계자 : (쫒아오며)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
아버지 : 나가라매요?
교육청 관계자 : (부들부들…)
—
에피소드 2, 에피소드 1 이후 얼마 후
배경설명 : 에피소드 1 교육청 관계자 학교 다시 방문, 선생님들과 담화 자리
교육청 관계자 : XXX 출신들은 다들 명문이고 똑똑한 사람들 이라고 들었는데, 간혹 정장도 제대로 못 입고 목티나 입고와서 출신 명성 까먹는 사람들이 꼭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버지 : (부들부들…)
담화 끝난 후
아버지 : (교육청 관계자 따라감) 저기요.
교육청 관계자 : 응?
아버지 : 꼭 그렇게 사람을 대놓고 까야 속이 시원해요?
교육청 관계자 : 내가 뭘?!?
아버지 : 아까 그게 나한테 한말이잖아요.
교육청 관계자 : (부들부들…)
—
에피소드 3, 군인 시절
몇개월 차이 나는 고참이 맨날 이유없이 괴롭힘. 괜한 잔심부름 시키고 갈구고 귀찮게 굴어댐.
어느날 짜증나서 확 밀쳐 넘어뜨리고 화내고 나감.
사고쳤다 하고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고참 당사자는 창피해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별 일 없이 넘어갔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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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4, 어머니와 같은 학교 근무하며 연애하던 시절, 1960년 후반 즈음
교장 선생님이랑 하루라도 안 싸우는 날이 없음.
조금만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대판 싸움.
그래도 유일하게 부당함에 항거하는 선생님이어서 여선생님들이 뒤에서 몰래 박수 쳐주고 인기 많았다고…(어머니 증언?)
—
에피소드 5, 에피소드 4랑 같은 시절
당시 학부형과 선생님 사이에 촌지 주고 받는 일이 의례적으로 있었던듯
어떤 학부형께서 아버지께 촌지를 슬적 건네고 감. 이게 좀 못마땅 하심
아버지 : 이게 뭐에요? 가져가세요.
하지만 학부형은 그냥 놓고 감(아마 예의상 거절한거라고 생각하신듯?)
몇번 다시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지 않자
촌지는 다음날 주인 없는 물건으로 교무실 벽에 걸려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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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개가 더 있긴 한데, 그건 농도도 너무 강하고 얽힌 사람도 많아서 인터넷으론 못뿌리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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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유전이네요.
그렇다. 우리회사, SK Planet은 반바지와 슬리퍼 출근이 허용된다.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6년을 지내온 나에게는 감히 생각 못할 복장이다.
올해 초에 이직한 SK Planet도 근본은 대기업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사 첫날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가 여기저기 핀잔(?) 세례를 받고 나서야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할 용기가 생긴 옹졸한 나 자신이다.
그러다가 지난주 갑작스레 결심(?)을 했다.
갑작스레 이렇게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연이은 장마와 푹푹 찌는 더위로 땀에 진창된 청바지와 양말, 그리고 비라도 오면 축축하게 젖는 신발의 불편함을 도저히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쨋든, 마음먹은 기왕에 마음 약해지기 전에 얼른 반바지와 슬리퍼를 사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 휘휘 돌아다니던 중 홈플러스에서는 마음에 드는 반바지 두벌을 샀고 가든파이브에서 마음에 드는 조리를 발견! 냉큼 사버렸다. 때마침 조리는 한정 기한 반값 할인 제품이었다. 운도 좋다. 개인적으로 신발은 무조건 좋은걸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조리를 살때는 반바지 살때 보다 시간과 돈을 좀더 많이 썼다.
– 새로 산 조리, bearpaw 제품, 다리털 테러는 죄송, 반바지는 그냥 평범한 스판 반바지니까 생략! (사진 찍기도 귀찮고…) –
그렇게 지난 한주동안 반바지와 조리를 신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내린 결론은
편해도 너무 편했다. 출근 동안 땀에 쩔어 걸치덕 대는 청바지와 갑갑한 양말과의 싸움은 이제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고, 출근 한 후에도 땀이 다 마를때까지 갑갑한 열기를 뿜어내는 양말의 찜찜함을 더이상 참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맬발의 상쾌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몸이 편했고 무엇보다 발이 정말 상쾌했다. 몸이 편하고 발도 편하니 자연스레 기분도 좋아지고, 평소의 업무 스트레스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일도 손에 잘 잡히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다.
단순한 논리이긴 한데,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평생 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부정 할 수 는 없다. 부처님, 예수님 처럼 평상 고행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팀 사람들이 모내기 하다 왔냐고 놀린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