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책무 – 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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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의 글들은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맥도널드는 전쟁범죄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독일과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정부가 저지른 포악한 행위에 대하여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 그리고 이어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진다. “영국과 미국 사람들은 전쟁 중에 저질러진 잔인한 행위들, 즉 민간인에 대한 폭격, 각종 전쟁 기술,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등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가?” 1945년에서 1946년 사이에 학부생이었던 나에게 이런 질문들은 아주 의미심장하고 예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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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책임에 관해서는, 조금 다르지만 역시 고통스러운 질문들이 남아 있다. 지식인들이라면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정부의 문제점, 동기, 감추어진 의도 들을 분석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서방 세계의 지식인들은 정치적 자유, 정보에 접근할 권리,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만큼 더욱 그런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 소수의 특권층을 위하여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현대사에 일어난 사건들을 왜곡과 오도, 이데올로기, 계급적 이해관계 뒤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라고 시간적 여유, 시설, 훈련 등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책임은 맥도널드가 말한 “일반 대중의 책임” 보다 훨씬 엄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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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여서 아무 논평 없이 지나갈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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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인이 국가이익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하여 거짓말을 한 것은 그리 큰 관심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지식인 사회에서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미국이 인근 국가(쿠바)를 공격한 것이 부정한 일이 아니었다고 온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본분으로 생각하는 역사가에게 인문학계의 윗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을, 지식인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리고 베트남 협상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와 그 대변인이 무수히 해온 거짓말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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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실만 강조해두고자 한다. 전문가 숭배는 이기적(그 전문가들의 이익에만 봉사)일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다. 물론 필요한 곳에서는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들 분야는 진지한 학문 분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학문 분야의 장점, 특히 그 학문이 이룩한 성과를 판단해본 다음에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일뿐만 아니라 아주 위험하다. 일부에서 믿는 것처럼 외교정책을 수행할때 적용되는 제대로 검증된 이론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잘 보존된 비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원칙이나 정보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왜 그것을 지금껏 공개하지 않고 있는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혹은 정책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볼 때, 외부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고려 사항과 원칙들이 있다는 얘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

우리가 지식인의 책임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그들이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분석에 어떤 구실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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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 맥도널드의 글과 지식인의 책무로 돌아가보자. 맥도널드는 독일의 강제 수용소 경리부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그 경리부장을 목매달아 처형하겠다고 하자 그는 눈물을 터뜨리며 이렇게 항의 했다. “왜 나를 처형하려고 합니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맥도널드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도덕률과 어긋나는 지시를 받았을 때 상급자에게 적극 저항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 강제수용소 경리부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 했길래?”라는 질문은, 매일 베트남 학살 사건을 신문에서 읽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자유의 옹호라는 번드레한 헛구호를 정당화하는 기만행위들을 만들어내고, 말하고, 용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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